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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수사 이억기(37) 인맥의 신


 한국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이억기 장군은 당항포해전 부터 출전한 것으로 그려진다.

1591년(선조 24) 순천부사를 거쳐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수사가 되어,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경상우수사 원균(元均) 등과 합세해 당항포(唐項浦)·한산도(閑山島)·안골포(安骨浦)·부산포(釜山浦) 등지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1596년에는 휘하의 전선(戰船)을 이끌고 전라 좌·우도 사이를 내왕하면서 진도와 제주도의 전투 준비를 돕는 한편, 한산도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본영을 응원하는 등 기동타격군의 구실을 수행하였다. 이순신이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잡혀가 조사를 받자, 이항복(李恒福)·김명원(金命元) 등 조정대신들에게 서신을 보내 무죄를 적극 변론하였다.

 그렇다면 이억기 장군을 따르는 전라 우수영 관포의 장수들은 누구 누구 일까. 


위도(蝟島)가리포(加里浦)에 수군 진관(水軍鎭管)을 설치하여, 임치(臨淄)·고군산(古群山)·산목포(山木浦)·다경포(多慶浦)·법성포(法聖浦)·검모포(黔毛浦)·군산포(群山浦)·신도(新島)의 여덟 보(堡)를 위도에 소속시키고, 고금도(古今島)·남도포(南桃浦)·금갑도(金甲島)·어란포(於蘭浦)·이진(梨津)·신지도(薪智島)·마도(馬島)·회령포(會寧浦)의 여덟 보(堡)를 가리포(加里浦)에 소속시켰다. 두 진(鎭)은 양남(兩南) 수로(水路)의 인후(咽喉)였으므로 본도(本道)의 감사(監司)와 수사(水使)에게 순의(詢議)하여 진관(鎭管)을 설치한 것이다.

숙종 9년 윤6월 10일 경술 1번째기사 1683년 청 강희(康熙) 22년의 실록 기사이다.

남도포 만호 정걸, 채연홍,노홍,유경국이   나주에는 이경록이, 전라감사로는 이광이 있었다.

목포 만호 조세필, 군산포 만호 조성린이 있었다.

 저술자료협찬: krol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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